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했다.
어제 '태양을 삼켜라' 첫방송을 보면서 손발이 오그라들 것 같았다.
아프리카 정글, 라스베가스, 제주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엄청난 스케일의 드라마는 '올인'의 유쳘용 PD와 최완규 작가의 작품이다. '올인'은 본 적이 없어서 뭐라 왈가왈부 할 수 없겠지만 이번 작품 '태양을 삼켜라'는 왠지 '올인'에서 크게 벗어날 것 같진 않다.
제작비 250억원과 거물급? 스타들이 대거 참여한 이 드라마는 한국 드라마 제작의 문제점을 총 망라해 보여주고 있다.
기획의도
1. 미니시리즈의 기획이 방향을 잃고 표류하고 있다.
수년째 멜로드라마는 실패를 거듭하고 있고 유행처럼 제작되었던 전문직 드라마도 작가 시스템과 제작 여건이 뒷받침 되지 못해 설 곳을 읽고 있다. 이러한 불확실성의 시대에 여전히 확실한 승부처는 강한 스토리다. 우리 현대사에 상처로 남아있는 사실에서 극적인 모티브를 취해 주인광의 파란 만장한 인생 역정을 사실감 있게 그려 나갈 것이다.
수많은 드라마들의 실패 속에서 '태양을 삼켜라'가 미니시리즈의 새로운 모델을 '강한 스토리'를 통해 보여주겠다는 포부를 담고 있다.
그렇다면 '강한 스토리'란 도대체 무엇인가.
현대사의 상처로 남아있다는 사건은 국토사업단이고, 거기서 찾아낸 극적인 모티브라는 것이, 도망친 깡패와 보살펴주던 순수한 제주처녀가 순식간에 열정적인 사랑에 빠져 아이를 낳았고, 이 아이가 고아로서 험한 새상 역경을 이겨내며 살아간다는 이야기?
너무 진부해서 이제는 더이상 써먹는 것이 미안할 정도의 스토리를 '강한 스토리'라고 부른다면 이 드라마는 첫번째 기획의도를 아주 잘 반영했다.
2. 완성도 높고 재미있는 드라마를 제작하는 것,
그것이 이 드라마의 첫 번째 목표이자 기획의도이다. 재미에 치중해서 구성이 허술하거나 제작이 엉성해도 용인하고 넘어가는 관례를 버리고 완성도 높은 드라마를 만들 것이다.
이 기획의도는 아주 맘에 드는 대목이다. 그 동안 "환상의 커플", "꽃보다 남자", "내조이 여왕'등 재미에만 치중하느라 드라마 자체의 완성도는 터무니 없이 떨어지던 드라마들이 인기를 끌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완성도 높은 드라마를 만든다는 것에 100 % 찬성이다.
하지만, 첫화부터 완성도는 바닥을 친다. 극의 전개와는 불필요하게 라스베가스의 전경이라던지, 태양의 서커스 장면들이 너무 많이 들어갔다. 이 두가지가 극에서 꼭 빠져야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도라는게 있다. 여기가 라스베가스인거 알려주면 되는거고, 성유리가 태양의 서커스에서 연출한다는 것을 알려주면 되는 것이다.
라스베가스, 아프리카 로케한거 자랑하려고 많이 넣은 건지, 아니면 로케한게 아까워서 어떻게라도 한 신 더 집어 넣어보려고 한건지 불필요하게 많이 들어갔다. 연출자는 아무리 좋고 아름다운 신이 있더라도 극의 흐름에 방해가 된다면 과감히 버려야하는 결단을 내리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제발좀 아깝다고 마구 넣지말고 버릴건 버렸으면 좋겠다.
그리고 손발이 오그라들게 했던 바닷속 물고기들....
아름다운 장면을 만들고 싶었으면 어디서 물고기들 진짜 공수해와서 찍던가, 아니면 물고기들이 많은 장소를 찾아서 찍던가,,, 꽃남 CG만 욕할게 아니다. 요즘은 어떻게서든지 대충해서 CG로 때우려는 경향이 있다. 연출자가 자신의 작품에 조금만 더 욕심을 냈다면 저런 장면은 차라리 안찍는게 나을 뻔 했다.
3.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될 것이라는 현란한 홍보카피처럼 상상하던 모든 것이 꿈이 되었고, 그래서 꿈은 이루어진다는 희망으로 행복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 드라마는 우리 모두에게 꿈을 꾸게 했던 서커스 같은 드라마가 될 것이다.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애증과 애정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곡예를 하듯이 좌절과 성공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극적으로 펼쳐진다.
희노애락
우리의 삶을 간단한 4글자로 줄여놓은 멋진 말이다.
모든 삶에는 희노애락이 있다. 그 중에서도 '애'는 우리나라 드라마가 가장 사랑하는 대목이다. 맨날 질질 짜며 사랑타령하는 우리나라 드라마가 치가 떨릴 정도로 싫다. 하지만 어째겠는가, 우리네 인생에서 사랑은 빼놓을 수 없는 항목이다. 사랑이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연출과 작가에 있다.
사랑이 항상 눈물만 가득한 것도 아닌데 왜 다들 애증, 애정, 사랑, 우정 이 네가지에서만 빙빙 돌는 건지 모르겠다. 작가와 연출가들이 그런 사랑만 해본건지, 너무 현실감이 떨어지는 사랑놀이는 그만했으면 좋겠다.
4. 아프리카 정글과 라스베가스, 그리고 제주도를 넘나들며 제작될 이 드라마는 유행처럼 된 해외로케이션 드라마의 정형성을 탈피하여 새로운 공간적 설정이 드라마의 극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활용될 것이다.
지상 최대의 쇼인 라스베가스 쇼와 아프리카 반군들이 장악하고 있는 다이아몬드 광산등이 주인공들의 인생에 전환점을 마련해주는 주요 공간으로 묘사됨으로써 드라마에 또 다른 활력소와 재미를 선사하게 될 것이다.
유행처럼 된 해외로케이션 드라마의 정형성을 탈피하겠다. 전혀 반대하고 싶지 않은 말이다. 문제는 왜 주인공은 다이아몬드 광산과 라스베가스 쇼를 통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마련해야하는 것이다. 드라마란 것이 보는 사람에게 따뜻함을 선사하고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거기서 공감을 이끌어내야하는데 나도 내 인생의 전환점을 마련하기 위해서 라스베가스에 가고 다이아몬드 광산에서 총질이라도 해야한다는 것인가?
이야기의 흐름과는 너무 개연성이 없는 배경설정인데도 굳이 라스베가스와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한다니,, 참으로 어이가 없고 그걸 너무 잘 끼워맞춘 기획의도 글 솜씨에 감탄할 뿐이다.
이 휘황찬란한 배경설정은 그들이 말하는 '강한 스토리'를 새롭게 전개할 배경이 필요했을 뿐이다. 이 스토리가 서울을 배경으로 한다면 분명 너무 진부한 스토리가 들통이 날테니 말이다.
자꾸 각박해지는 세상이다. 연출자들이 수십억 돈을 들여서 말도 안되고 터무니없는 나와는 전혀 관련없는 나라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여기서 일어나는 작고 사소한 이야기들로 사람들과 공감할 수 있는 드라마를 좀 만들었으면 좋겠다.
5. 이 드라마는 제주도와 서귀포시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제작된다. 서귀포 항을 중심으로 제주와 서귀포시 전역에 걸쳐 아름다운 풍광과 산업이 드라마를 통해 소개 될 것이다. 이는 점점 퇴색되어져가는 지자체의 드라마 제작 지원 체계에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게 될 것이며 갈수록 어려워져가는 드라마 제작 환경에 새바람을 불러 일으키게 될 것이다.
드라마 제작 환경이 어려운 이유에는 '돈'도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고질적인 제작 습관에 있다. 며칠전 황금어장 무릎팍에 김영희 PD가 나왔었다. 이경규가 잠깐 등장해서 아주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언제 시스템을 바꾸냐구요. 사람부터 다 바꿔야대요" 물론 농담조로 말한 말이지만, 정말 습관을 바꿀 수 없다면 사람을 다 바꿔야한다.
6월 연기자 배종옥씨의 강연에서 이런 질문을 했다.
"한국의 드라마 제작 현실에 1 - 10 점수를 준다면 몇점이고, 배우의 눈에서 제작 현실을 바라봤을 때 무엇이 문제인가"
배종옥씨는 자기가 감히 점수를 줄 수 있는 입장은 아니지만, 굳이 점수를 먹인다면 5점이라고 말하며 우리나라 드라마 제작 현실은 생각보다 심각하다고 말했다. 촬영을 10시에 시작한다고 하면, 10시에 모여서 그때부터 조명 맞추고, 음향 맞추고, 카메리 리허설 등,, 배우와 연출들은 계속 촬영 준비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고, 그러다보면 스케쥴이 미뤄져서 결국엔 방송 당일에 촬영해서 드라마가 방송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물론 제작비에도 큰 문제가 있겠지만은, 기본을 지키는 연습부터 해야 드라마 제작 환경에 새 바람이 불지 않을까.
어쨋든, '태양의 삼켜라'는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은 드라마다. 그리고 맘같아선 이 드라마가 확 망했으면 좋겠다. 아주 좋은 본보기로 이 드라마가 망해야 스케일이 크고 돈을 투자하는 것만이 문제 해결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테니 말이다.
TV는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다.
좀 더 사람을 이해하는 작업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아,, 기분좋게 드라마보다가 울컥하는 맘에
아주 두서없이 마구 지껄여버렸구만-_-